부여를 탈출하여 남만주의 졸본지에 도착한 주몽은 졸본왕의 딸 중 둘째 딸인 소서노와 혼인하였다.
주몽과 결혼한 소서노는 비류와 온조라는 두 아들을 낳게 된다.
이후 졸본왕이 후사 없이 죽자(딸만 3명 있었다고 한다) 주몽이 왕으로 추대되어 졸본왕이 되면서 고구려를 세우게 된다.
즉 고구려는 졸본부여에 살던 맥족의 소수맥에서 유래했다.
주몽과 소서노왕이 된 주몽은 주변 지역을 평정하고 영토를 크게 넓히게 된다.
당시 남만주의 동가강, 압록강, 두만강, 개마고원 지역에는 수많은 예맥계 소국이 산재해 있었는데, 주몽이 이들을 정복하면서 세력이 커지면서 고구려가 맥족국가에서 예맥족국가로 발전하게 되었다.
- 주몽의 모유화 부인이 사망하다.
기원전 24년 정유년에 유화부인이 동부여에서 죽었다.
이에 주몽은 고구려군 수만 명을 동원하여 유화부인을 동부여에서 졸본으로 모시고 장사지냈는데, 황태후의 예로 산더미 같은 능을 만들고 옆에 묘사를 세웠다. - * 부여에 남은 주몽의 첫 번째 부인 예씨와 아들 율리 주몽이 급히 부여를 탈출하는 바람에 임신한 예씨를 부여에 두고 온다.
이후 예씨 부인은 주몽의 아들 유리를 낳게 된다.
아버지는 없었지만 예 씨 부인은 아들 유리를 정성껏 키웠다고 한다.
유리 역시 아버지 주몽을 닮아 어려서부터 활을 잘 쏘았다고 한다.
그러나 어느 날 유리는 길가에서 참새를 잡으려다 실수로 물을 길던 아내의 항아리를 깨뜨렸다.
그러자 화가 난 아내가 꾸짖었다. - 애가 없어 이렇게 맘대로 놀고 있다.
” - 유리는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 집에 돌아와 엄마에게 물었다.
- 엄마, 내가 아버지가 없어? 제 아버지는 어떤 분이세요? 지금 어디에 있어요?”
- 그러자 유리의 어머니 예씨 부인이 대답했다.
- 세상에 아버지 없는 사람이 누가 있나. 너의 아버지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국가(부여)에서 용서받지 못했어. 이에 남쪽으로 도망가 고구려를 건국하고 왕이 되었다.
” - 이유리는 “그럼 아버지를 만나러 갈게요.”
- 그러나 어머니 예 씨는 이대로 찾아가면 네가 아들인 줄 모르겠다.
네 아버지가 떠날 때 나에게 네가 아들을 낳으면 내가 남긴 것이 있는데 그것을 칠각형 돌 위의 소나무 밑에 숨겨 두었다고 말하라. “만일 이것을 발견하면 곧 내 아들임을 알았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증표를 찾지 않으면 넌 아버지를 만날 수 없어.” - 다음날부터 유리는 아버지가 남긴 증표를 찾기 위해 매일 산에 올라 칠각형 돌과 소나무를 잠시 찾았다.
하지만 칠각형의 돌이 달린 소나무는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이에 낙담해 마룻바닥에 앉아 있는데 집의 기둥과 주춧돌 사이로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을까. 그리고 집의 주춧돌을 자세히 보면 이 주춧돌이 칠각형의 돌 모양을 하고 있고 그 위의 기둥이 소나무로 만들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유리는 칠각초와 소나무 기둥 사이에 숨겨져 있는 징표(부러진 칼조각)를 찾아낸다.
증표를 발견한 ‘유리’
증표를 확보한 유리는 어머니 예씨 부인과 함께 기원전 19년 4월(음력) 고구려에 도착해 아버지 주몽을 만난다.
주몽은 부러진 칼 조각을 맞춰보다가 자신의 아들임을 알아차린다.
주몽은 크게 기뻐하며 유리를 태자로 책봉하고 부여에서 죽은 아내 예씨와 재회하였다.
- 고구려를 떠나는 비류와 온조, 그리고 백제의 건국비록 주몽과 생이별하며 어렵게 아들을 키운 예씨 부인과 그의 아들 유리는 해피엔딩으로 끝나게 되었는데, 유리의 등장으로 피를 보게 된 인물이 있었고, 바로 주몽과 소서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비류와 온조였다.
망연자실한 소서노.
졸본왕의 둘째 딸 소서노는 주몽이 졸본왕으로 즉위하여 고구려 건국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따라서 다음 고구려왕은 당연히 비류와 온조의 몫이었다.
하지만 굴러온 돌을 뽑는다는 속담처럼 부여에서 온 예씨 부인과 유리가 자기 아들들을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이에 비류와 온조는 고구려를 떠나 남쪽으로 내려갔고 형은 미추홀(오늘날 인천 지역) 지역에 정착하면서 동생 온조는 한강유역(오늘날 서울 지역)에 정착했다.
하지만 미추홀 지역은 바다 옆에 위치하여 염분이 많고 식수가 부족해 농사를 지을 수 없어 온조가 정착한 한강 유역에 와서 무리들이 우글거린다.
이후 비류가 죽자 온조는 형들의 무리를 합쳐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고 백제를 세웠다.
즉 초기 백제는 고구려의 뿌리인 소수맥에서 갈라진 순혈맥족의 나라였다.
고구려의 성장과 백제의 건국